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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Box

대화 상대: 정다희 감독님
이전에 교수님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께서 아이디어나 떠오르는 글귀나 이미지들을 기록하고 보관해 두는 노트를 보여 주셨잖아요. 그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글귀나 아이디어 같은 것들을 기록하시는 게 수집하는 수집가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상자라는 콘셉트에도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인터뷰에서는 교수님에 대한, 교수님의 수집, 교수님의 안에 담겨 있는 것, 그리고 교수님을 채우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정다희 감독님

첫 번째 질문입니다! 요즘 바쁘신 삶을 보내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교수님의 일상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재밌다 (웃음) 근데 요즘이라고 하면 시기별로 되게 다른데, 최근에는 마감으로 채우고 있어요. 한 2주 후에 마감이 있어서.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시계를 맞추는 건 아닌데 그냥 눈이 저절로 떠져요. 아침 준비하고 운전하고 작업실로 와서 작업하고 저녁에 요가하고 집에 가서 자는데, 거의 지금 애니메이션 만드는 작업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요.

그리고 지금 망원동에 작업실이 있는데 여기 이제 다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료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 동료들의 작업을 구경하기도 하고 서로 보여주면서 이야기 나누고 있어서 친구와의 이야기, 동료와의 대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걸로 거의 채워져 있고 그 다음에 저녁에 운동을 꼭 하려고 해요.
지금 만들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한국이랑 프랑스랑 캐나다의 제작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한국 영화진흥위원회라는 기관에서 제작 지원 완료 마감이 있어요. 거의 완성한 작품을 제출하고 그 다음에 조금 더 작업을 해서 9월에 캐나다에 가서 포스트 프로덕션 만들고 그 다음에 한 10월 정도에 끝날 예정이에요.

정말 애니메이션을 작업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계획과 그 계획을 진행시키려는 의지력 그런 게 정말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현지는 J에요? P에요?

최근에 다시 했을 때는 J가 나왔더라구요. 교수님 MBTI도 궁금해요!

저는 계속 다시 해도 ENFJ가 나오는데, 그 J가 55%에요. 한 45%가 P.

다음 두 번째 질문입니다. <의자 위의 남자> 같은 여러 작품에서 감독님의 깊은 생각이 담겨져 있는 글귀들이 많은데 이제 그 글귀들이 떠오르면 기록하고 수집하시는 습관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언제부터 시작된 습관이고 왜 이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수집 습관에 대한 얘기가 궁금합니다.

뭔가 그림을, 되게 작은 아이디어 같은 거를 수집한 거는 대학교 때부터 였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 때부터 되게 작은 정말 낙서를 수집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림을 너무 안 그려서 (웃음) 이거라도 모아둬야지 하며 수집을 해 두었던 되게 작은 낙서가 나중에 몇 년이 지나서 그때 그 그림을 왜 그렸지? 이러면서 그게 이야기가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낙서라는 게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거잖아요. 제가 대학생 때 땅에 이렇게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을 그린 적이 있어요 (웃음) 정말 무의식적으로 그렸어요. 한 6년 정도 있다가 <나무의 시간>을 만들 때, 땅에 머리 박혀서 뽑혀졌더니 뿌리인 사람이 나오는 그런 장면이 있는데, 그게 거기서 온 거에요. 그때 뭔가 생각이 되게 많아서, ‘생각이 너무 많아’ 이러면서 머리를 땅에 박으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나무의 시간>에 나오는 캐릭터가 머리가 없고 뿌리가 있어요.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이성,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거를 없애 버리면서 인간인데 인간이 아닌 캐릭터가 된 거잖아요. 연관성이 있어요. 그 캐릭터가 <나무의 시간>에 나왔다가 <의자 위에 남자>에 또 나와요. 그런데 그 의자에 남자의 나오는 이유도 거의 똑같은 이유였어요. 의자에 남자가 앉아서 생각만 하는 사람이잖아요. 마지막에 의자를 가지고 나가는 캐릭터가 머리에 뿔이 있는 그 캐릭터이거든요. 그래서 되게 쓸데없는 낙서가 그렇게 이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의자 위의 남자

사람들이 저는 다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비슷하게 반복되는 나에게 있는 어떤 지점들이 그게 사람들이 다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지점들이에요. 근데 그게 뭐였을까?를 생각하다가 나오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나고 보면 되게 별거 아닌 걱정들 이런 거를 지금도 더 많이 하는데 거기서부터 그냥 온 거거든요. 제가 <의자 위의 남자>를 만들 당시에 그 캐릭터가 들어와서 의자를 가지고 나가는 장면을 넣었을 때, 그때 제 주변에 있던 동료 감독 중 한 명에게 내가 이 캐릭터를 여기 쓰고 싶은데 왜 그런지를 모르겠어라는 말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동료 감독이 뭐라고 했냐면 너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유가 있어 하고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그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의 이유가 뭔 지를 생각해 봐 하고 말해 주는 거예요. 그게 또 되게 중요한 얘기였던 것 같아요.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그 캐릭터가 의자 위의 남자랑 상반되게, 그러니까 머리를 계속 굴리고 계속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냥 어떻게 보면 직관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이구나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좀 정신없이 말하는 것 같아요 (웃음)

정말 머릿속에 정말 생각도 많고 말하고 싶은 건 많은데 이게 정리가 돼서 입 밖으로 나오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게.

근데 이게 또 되게 재미있는 게 제가 이렇게 대충 말하면 제 말을 듣고 현지가 이제 현지 마음대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또 다른 게 태어나는 거 같아요.

이거는 정말 말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면서도, 예술 작품을 보면서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아요. 제 세계 안에서 다시 새롭게 재해석되고 생성되고. 그러면 대학생 때부터 쓰셨으면 엄청 많은 양의 노트가 자리 잡으셨을 것 같은데, 지금은 작업실이셔서 보여주실 수는 없으신거죠?

어느 시기부터는 일기를 진짜 많이 썼어요. 그날그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뭔가 다 해소가 되지 않는 감정이 있으면 그거에 대해서 쓰고 해서 일기가 진짜 많아요. 그래서 그 일기장 등에 몇 월 며칠부터 몇 월 며칠까지 일기 이렇게 써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해서 그거를 쭉 모아뒀어요. 정말 헛소리가 많이 써 있기 때문에 그거를 굳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거는 아니에요 (웃음)

프랑스에 있었을 때는 읽고 있는 책 중에 되게 인상적인 내용들을 거기다가 써놓기도 했어요. 작업 노트 겸 일기였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최근에 알게 된 건데 비올레타 로페즈라고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있잖아요. 그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업을 하면서 고민이 됐었던 모든 지점을 다 기록을 해 놨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그게 되게 좋은 생각이라고 느껴지는 게, 지금 이 장면을 만들면서 왜 안 되고 왜 안 되는지에 대한 고민의 지점, 그리고 그거를 이렇게 시도해 봤는데 되었다던지 그리고 이렇게도 해봤는데 그때 뭔가 풀렸다던지 이런 되게 세세한 기록을 적어 두면 그게 나중에 자기 자신한테 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게 또 제 생각에는 비올레타 로페즈라는 사람이 그 작업 노트 자체를 나중에 공개를 하니까, 나 뿐만 아니라 그거를 보는 사람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결과물만 보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걸 보게 되잖아요. 그게 이제 공부가 되죠.

다음은 작품에 관련된 질문은 아닌데 뭔가 저와 공통점이 있어서 질문드리는 건데요! 교수님 sns에서 종종 등산 사진을 올리시잖아요. 근데 저도 제 웹사이트 내 보관함에 그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등산이라는 공통점이 너무 반가웠어요. 그래서 교수님이 지금까지 가본 산 중에 제일 좋았던 산과 추천하시는 산 그리고 왜 등산을 좋아하시는지 등등 등산 토크를 살짝만 해볼까해요(웃음)

이거 너무 웃긴 것 같아요(웃음) 저는 산 중에 제일 좋아하는 산이 지리산인 것 같고요. 지리산 제일 좋아하고 지리산 종주했던 거 너무 좋았고. 근데 이제 뭔가 산에 갔을 때 여기는 진짜 너무 아름답다 이렇게 했던 곳은 여러 군데였는데, 추천해 주고 싶은 되게 특이한 곳은 구담봉,옥순봉이라는 곳이에요. 대야산도 되게 좋았고. 그러니까 여기 이런 데는 다 괴산이라고 하는 충청도의 괴산 지역인데, 여기 보면 산에 산에 산 이런 풍경이에요. 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동네예요. 이 동네 자체가 이 동네에 어디를 가든 다 산을 탈 수 있는! 너무 멋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 좀 더 가볍게 갈 수 있는 데는 속리산.
지리산
풍경을 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이렇게 높은 데 올라가서 항상 드는 생각이 정말 내려가고 싶지 않다. 땅으로 내려가고 싶지가 않다. 등산을 이제 많이 하다 보니까 내리막보다 오르막이 훨씬 쉬운 거예요. 그리고 오르막을 올라갈 때 이렇게 심장이 콩콩콩 뛰잖아요. 꾸준하게 올라갈 때 몸이 되게 이렇게 기분 좋아하는 반응을 하는 것 같아요.

다시 이제 그러면 다시 교수님에 관한 내용으로 돌아갈게요. 때로는 우리는 채워 놓았던 소중한 상자들을 먼지가 쌓일 때까지 잊어버리다가 천천히 기억에서 꺼내서 되찾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혹시 최근에 이거 잊어버리고 살았었는데 다시 와 닿게 된 소중한 것들이 혹시 계실까요?

너무 작업하느라고 바빠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최근에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게 있어요. 이번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되게 여러 사람들이 같이 참여를 하게 됐는데 작업을 참여하게 된 사운드 디자이너 분이랑 음악 감독님이랑 저랑 이렇게 셋이 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음악 감독님하고 사운드 디자이너님이 둘 다 이 작업에 참여하게 돼서 너무 행복하고 좋다는 얘기를 해 주신게 진짜 소중하다고 느꼈어요. 애니메이터 분도 이 작업을 참여하게 돼서 되게 행복하다고 했는데 작업을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 작업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게 진짜 소중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교수님은 혹시 수집하는 것이나 그것을 담아두는 보관함 같은 걸 가지고 계신가요? 이 수집하는 게 약간 동전이든지 책이든지 그런 실물적인 수집품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추억 경험 아이디어 성품이나 아니면 자기가 담고 사는 가치관일 수도 있고. 그래서 교수님이 가지신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소중한 보물 소지품을 골라주세요.

어렵다. 저 어렸을 때는 뭐를 많이 수집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는 우표를 수집했거든요. 우표를 수집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써준 편지 있잖아요. 그런 거 다 이제 수집해둔 박스가 있기도 하고. 되게 작은 돌이나 조개 같은 거 줍는 등 어렸을 때는 뭔가 계속 수집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짐이 너무 많아요. 뭔가 수집하는 취미 자체는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되게 최근에 생긴 뭔가 수집하는 게 있다면 한국 지도를 사가지고 그 지도에 내가 어디를 갔었는지를 붙여 두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도 일종의 수집이라는 수집일 것 같아요. 장소에 대한 수집. 제가 아는 분이 기록을 진짜 잘하시는 분이 있는데, 블로그에다가 거의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무슨 경험을 했는지를 다 써두고 책을 읽은 거에 대해서 그 책에 대한 감상도 다 쓰고. 정말 그 한 인간의 모든 경험에 대한 기록물이더라고요. 그 블로그가 저 너무 멋있다고 느껴졌어요.
저 되게 좋아하는 수집품 중에 하나는 그림책이에요. 제가 프랑스에 살 때, 프랑스에 스트라스 부르라고 하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도시가 있거든요. 도서관에 주말 일요일 아침에 가서 안에 있는 모든 책들을 다 꺼내봤던 것 같아요. 모든 그림책을 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그걸 봤는데 그게 진짜 너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 중에 되게 마음에 드는 책들이 있으면 그걸 사가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교수님의 상자를 새롭게 채워보고 싶은 게 있나요? 새롭게 수집해보고 싶은 것들, 새로운 경험이나 목표 같은 교수님 안을 새롭게 채우고 싶은 것들이요.

저는 여행을 많이 가고 싶어요. 그냥 삶 전체를 통틀어서 그렇고 이번에는 일 때문에 해외에 계속 가게 되는데, 그게 여행 일정이기 보다는 그냥 간 김에 그 근처를 조금 보고 그러는. 사실은 세상이 엄청 넓잖아요. 세상이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우리가 이 집 근처 자기 주변에서 살다 보면, 이게 세상에 전부인 줄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여행을 가면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확장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행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일 하고 싶고 많이 경험하고 싶어요. 저는 세계 일주를 하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정말 오랫동안 그 바깥에 돌아다니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근데 그렇게 하기에는 이 체력이 안 받쳐주는 거 아닌가 좀 늙은 거 아닌가(웃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등산, 지리산 종주까지 하시고 요가도 하시는데

배낭 여행이면 좋을 것 같고, 혼자이든 누구랑 함께든 상관 없을 것 같아요. 다니다가 누구를 만나고 다시 혼자가 됐다가 만나고 이렇게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만약에 세계 일주를 하기가 힘들면 전국 일주라도 먼저 하고 싶어요. 돌아오기 위해서 잠깐 가는 여행이 아니라 정말 엄청 긴 시간에 여행을 해보는 걸 하고 싶어요.

그러면 이제 슬슬 이제 거의 막바지 질문인데요. 제가 교수님과 이렇게 나눴던 대화를 상자라는 콘셉트에 맞춰서 웹사이트 내에 게시할 예정인데 혹시 마음에 드시는 상자가 있나요? 제가 예시를 드리자면, 주크 박스 아니면 영화관의 메가박스 아니면 새장이라는 버드 박스 이런 상자들도 여러 개 있고, 아니면 스스로가 생각하는 감독님의 대표적인 오브제 상징물 같은 걸 얘기해 주시면 콘셉트에 맞춰서 꾸밀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뭔가 그렇게 말하면 블랙박스라고 말해야 될 것 같은데 블랙박스가 차에 있는 블랙박스가 아니라 영화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박스잖아요.. 영화관이 시커먼 박스잖아요. 그래서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고 뭐가 나올지 모르는. 뭐가 있는지 모르고 뭘 발견하게 될지 모르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고 가득 채워져 있을 수도 있고.


영화관

마지막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여쭙고 싶은 질문인데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표현하면서 그것에 다가가는 일이 때로는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일을 미래까지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든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마음을 표현하는 일 같은 거요. 그래서 자꾸 망설이게 되고 좀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저는 수업 때 교수님을 보면서 교수님께서는 지금 뭔가 자기가 하고 싶은 예술과 애니메이션을 하고 계시고 있는 모습에서 넘실대는 나다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행복함을 봤거든요.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보여지는 것들. 그래서 교수님께 조언을 듣고 싶었어요. 자꾸 이런 좋아하는 마음이 좀 망설여지고 회피하게 되고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 거에 대해서.

엄청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데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사람은 누구나 그럴 것 같은데 근데 좋아하는 마음을 회피하게 되는 이유는 목적지를 설정해 두고 그거를 바라기 때문이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때 뭔가 이렇게 성공했으면 좋겠고. 그런데 그거를 보지 않고, 여기 현재 좋아하는 마음에 충실한 거.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거 자체가 엄청 소중한 거거든요. 그런데 뭔가를 기대하게 되면, 소중한 걸 못 보고 기대하는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거든요. 그럼 내가 갖고 있는 것도 누리지 못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 좋아하는 마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즐기는 거. 저거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라면 보게 될 수밖에 없지만. 아까 처음에 얘기했던 현지가 뭘 소중하다고 느꼈는지 저한테 물어봤잖아요. 소중하다고 느끼는 거를 충실히 즐기는 마음.
사람마다 다 성격이 되게 다르잖아요.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달라서 저는 솔직히 말하면 되게 먼 미래의 목표를 보고 거기로 달려가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그때그때 바로 다음에 있었던 하고 싶은 거를 하면서 그게 잘 풀려서 그 다음으로 가고 그 다음으로 이렇게 왔던 사람이에요. 제가 어제 한지원 감독을 만났는데, 오히려 저랑 되게 반대였어요. 한 감독은 멀리 있는 어떤 목표를 두고 그거를 보고 계속 온 사람인데, 그래서 그걸 지금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성향의 사람이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은 지금 하고 싶은 거에 충실한 사람이고 근데 그 사람은 어떤 이제 목표를 설정해 두고 거기까지 가고 싶다고 달려왔던 사람이고. 그래서 사실 그러니까 정답이 있는 건 아니고 자기 성향에 따라서 결국 자기 삶을 다 살게 되는 거지.
정말 허무맹랑한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10년 전에 얘기했는데 그걸 지금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지원이도 그랬는데 그래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어~ 꿈은 이뤄져 꿈 진짜 꿈은 이루어져(웃음) 그러니까 꿈을 잘 꿔야 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The End